본문 바로가기
반도체 현직 설비 엔지니어

실수도 자산이다 - 설비 엔지니어로서 배운 3가지

by Drawvalue 2025. 8. 4.

1️⃣ “아는 척”이 만든 첫 번째 실수

입사 초기, 가장 크게 실패했던 순간은 “모른다고 말하지 못한 것”이었다. 장비 인입 직후 인터록 신호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고객사 엔지니어가 질문을 던졌는데, 나는 명확히 모르는 내용을 추측으로 대답했다. 그 결과, 다음 날 설비가 에러를 일으켰고, 그 원인이 내가 언급한 설정값 때문이었다. 문제는 기술적 오류보다도, 고객과의 신뢰가 크게 흔들렸다는 점이다. 그때 선임이 해준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기술보다 중요한 건, 정확한 커뮤니케이션이다.” 그 후 나는 모르면 반드시 확인 후 답하고, 말 한 마디에도 근거를 담기 위해 노력했다. 실수는 분명 아팠지만, 지금의 내 태도를 만든 전환점이 되었다.

설비 엔지니어 실수 경험

 

2️⃣ 설비 셋업 시 공간 확인을 놓쳤던 경험

어느 신규 라인에서 장비를 설치할 당시였다. 기계 반입과 배치 설계는 완료됐고, 유틸리티 시공도 완료된 상태였다. 그런데 장비 후면 도어를 열 수 없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장비 뒷공간 확보를 고려하지 않고, 벽체와 너무 밀착되게 배치한 것이었다. 결국 유틸리티 배관 일부를 다시 철거하고, 장비를 재이동해야 했다. 이로 인해 일정은 지연되고, 고객사로부터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었다. 이 사건 이후, 나는 셋업 계획서를 만들 때 실제 작업자 동선, 정비 접근성까지 시뮬레이션하는 습관을 들이게 되었다. 작은 공간의 오판이 수천만 원의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몸소 느낀 경험이었다.

3️⃣ 매뉴얼에만 의존했던 나의 초심

초반에는 장비를 이해할 때 매뉴얼과 회로도에만 너무 의존했다. 물론 문서 분석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하지만 현장은 매뉴얼과 다르게 움직인다. 특히 고객사의 Fab 환경은 장비 제작사 기준과 달라서, ‘이론적으로는 가능한 동작’이 실제로는 작동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어느 날 한 장비가 오작동을 일으켜 반복적인 트러블이 생겼는데, 나는 계속 매뉴얼의 정상 동작 조건만 반복 확인했다. 알고 보니 고객 Fab의 질소 공급 압력이 장비 설계 기준보다 낮게 설정되어 있어, 센서 감지가 실패했던 것이었다. 그 이후 나는 '현장을 기준으로 생각하는 사고'를 익히기 시작했고, 시스템보다 환경을 먼저 보는 시야가 생기게 됐다.

4️⃣ 실수를 겪으며 쌓인 내 무기들

설비 엔지니어로 몇 년을 일하다 보니, 나만의 기준이 생겼다. 실수는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한 체크리스트가 되었고, 커뮤니케이션은 모르면 물어보는 게 당연한 문화로 바뀌었다. 한때는 실수를 부끄러워했지만, 지금은 ‘어떻게 복구했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특히 후배들에게 조언할 때는 이 세 가지 실수 이야기를 종종 해준다. 왜냐하면, 나 역시 선배들의 실수담을 들으며 많이 배웠기 때문이다. 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은 없지만, 그 실수에서 시스템을 만들고 자신만의 기준을 만드는 사람이 결국 좋은 엔지니어가 된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매 프로젝트가 끝나면 셋업 로그를 정리하고, 다음 셋업 때 참고할 수 있는 실무 노트를 남기고 있다. 실수는 부끄러움이 아니라 자산이다.